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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始祖) 파산군(巴山君) 이상(李尙)의 큰아들인 2世 문하시랑평상사(門下侍郞平章事) 청(淸)의 세계(世系)는 3世 문하시중(門下侍中) 홍(弘), 4世 검교호군(檢校護軍) 자수(滋秀), 5世 무진(茂珍): 광주(光州)) 부사(府使) 운길(云吉) 까지는 생졸년대(生卒年代)와 묘소(墓所)의 기록이 *1)사승(私乘)에 부전(不傳)하나, 함안(파산)(咸安)(巴山) 이씨(李氏)의 발상지(發祥地)인 광려산(匡廬山) 두봉(兜峯) 하(下)인 함안현(咸安縣) 병곡면(竝谷面) 내동리(內洞里) 내곡동(內谷洞): 경남(慶南)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내곡리(內谷里) 내곡동(內谷洞)) 속칭(俗稱) 뒤길(두능(杜陵)에 *2)세전(世傳) 본거지(本居地)를 두고 관직(官職)에 임(任)하시고 계시었다.

 

그러나 1363年(공민왕12年(恭愍王) 생(生)인 6世 대구현령(大邱縣令) 즐(隲) 대(代)에 이르러 이미 세거(世居) 함안안인(咸安安仁):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杮洞): 今: 함안군 (咸安郡) 산인면(山仁面) 내인리(內仁里) 외동(外洞))을 안이대촌(安李大村): 咸安李氏 큰마을))이라 하였으나, 언제 내곡동(內谷洞)에서 시동(杮洞)으로 옮겨 왔는지는 *3)상고(詳考)할 수 없다.

 

하루는 6世 즐(隲)이 이웃 친구 안성(安省): 시호(諡號) 사간(思簡) 평양감사(平壤監司) 광주인(廣州人)) 과 바둑을 두다가 리중(里中)에 비상지변(非常地變)이 일어난 것을 듣고, 곧 진주군(晋州郡) 동면(東面)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 경남(慶南) 진주시(晋州市) 진성면(晋城面) 가진리(嘉津里 진동(津洞))으로 이거(移居)하니, 그때부터 *4)현재(賢材)가 연출(連出)하고 *5)과제(科第) 가 *6)연면(連綿) 하여, 8世인 미(美)와 그의 아들인 9世 인형(仁亨), 의형(義亨), 예형(禮亨), 지형(智亨) 오부자(五父子)가 육급제(六及第)를 하니, 성종(成宗)이 오부자(五父子)의 출생(出生)마을 진주군(晋州郡) 동면(東面)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을 "가좌촌(佳佐村)" 이라 사촌명(賜村名)까지 *7)사명(賜名)하여 *8)명문망족(名門望族)이 되고, 오부자(五父子)는 모두 관직(官職)에 올라 한성(漢城: 서울)으로 이거(移居)하여 4형제(四亨弟)는 다같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先生)의 제자(弟子)가 되었고, 9世 인형(仁亨)과는 학문(學問)과 *9)도의(道義)*10)막역지교(莫逆之交)가 되어 인형(仁亨)의 장남(長男) 10世 생원(生員) 격(翮)이 점필재(佔畢齋)의 사위(女壻)가 되었다.

 

이런 연고(緣故)로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연산군4年(燕山君))가 일어나자 9世 대사헌(大司憲) 인형(仁亨)이 죄(罪)없이 죽어가는 유생(儒生)을 구(求)하고자 상소문(上疏文)을 올렸다가 점필재(佔畢齋)의 문도(門徒)라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極刑)을 당(當)하자, 그의 동생(同生)들과 아들, 조카들이 사화(士禍)를 피(避)하여, 2제(二弟) 남원부사(南原府使) 의형(義亨)의 연고지(緣故地)인 고성(固城)으로 피신(避身)하고, 일부(一部)는 고향(故鄕) 진주(晋州)와 함안(咸安), 거제(巨濟)등지로 피신(避身)하게 되었다.

 

그리고 9世 인형(仁亨)의 마진묘소(麻津墓所): 진주군(晋州郡) 대곡면(大谷面) 마진동(麻津洞) 진두(津頭): 今: 진주시(晋州市) 대곡면(大谷面) 마진리(麻津里) 선영하(先塋下))를 금오랑(金吾郞):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이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남강(南江)건너 동면(東面)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 본가(本家)를 급습(急襲)하니, 자부(姉夫) 10世 격(翮)의 처(妻) 선산김씨(善山金氏): 점필재(佔畢齋)의 차녀(次女))는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가 피(避)할 수 없음을 알고, 모든 화근(禍根)인 *11)문적(文蹟)을 안고 진동(津洞) 전강(前江)인 남강(南江)에 투신자결(投身自決)하여 시신(屍身)도 수렴(收斂)치 못하고, 효부열여(孝婦烈女)를 기리는 의정부(議政府) 참찬(參贊) 곽종석(郭鍾錫) 찬(撰) *12)정려(旌閭)가 진동(津洞)에 세워졌다.

 

한편 당일(當日) 10世 격(翮)의 장남(長男)인 11世 충순위(忠順衛) 희식(希軾)은 참살(慘殺)을 당하고, 차남(次男)인 희철(希轍)은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어 생사(生死)도 알 수 없게 되자, 희식(希軾)의 계자(系子)로 종제(從弟) 희경(希瓊)의 차남(次男)인 종질(從姪) 12世 생원(生員) 응춘(應春)으로 계자(系子)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진주(晋州)에서, *13)창의(倡義) 전사(戰死)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二等)이 되었으나, 시신(屍身)도 수렴(收斂)치 못하고 무자(無子)하여 응춘(應春)의 3제(三弟)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二等)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 성춘(成春)의 장남(長男) 13世 집(檝)으로 계자(系子)하여, 종통(宗統)을 이어 대대(代代)로 진주군(晋州郡) 동면(東面)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에서 세거(世居)하였다.

 

그리고 13世 집(檝)의 증손(曾孫)인 종손(宗孫) 16世 천뢰(天賚): 1676年~1740年))가 진동(津洞)에서 하동군(河東郡) 악양면(岳陽面) 평사리(平沙里)로 이거(移居)하여, 그의 자손(子孫)들이 양보면(良甫面) 진교리(辰橋里)와 화개면(花開面) 등지(等地)에서 세거(世居)하고, 종손(宗孫) 24世 원석(元錫)의 손자(孫子)인 26世 영빈(英賓) 대(代)까지 11대(代)째 300여년간(餘年間) 하동군(河東郡) 악양면(岳陽面) 평사리(平沙里)에서 종가(宗家)를 지키고 있다.

 

한편 10世 격(翮)의 차남(次男)인 11世 희철(希轍)의 후계(後繼)는 행방(行方)을 알 수 없다가 희철(希轍)의 4대손(四代孫)인 15世 한(漢)의 묘소(墓所)가 거제군(巨濟郡) 동면(東面) 불동(佛洞): 거제시(巨濟市) 연초면(延草面) 불곡리(佛谷里) 산25번지(山25番地))에 소재(所在)함으로써 무오사화(戊午士禍)이후 6대(代)째 200여년간(餘年間)에 격(翮)의 혈손(血孫)은 단 한집인 것이 확인(確認)되었다.

 

그리고 9世 인형(仁亨)의 차남(次男)인 10世 진사(進士) 분(分羽 )의 자손(子孫)들은 대대(代代)로 고향(故鄕) 진주(晋州)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 가좌촌(佳佐村) 인근(隣近)에서 세거(世居)하였다.

 

그리고 10世 분(分羽 )의 증손(曾孫)인 13世 오위(五衛)의 사과(司果) 장(檣)의 차남(次男)인 14世 우백(友白): 1619年~1684年))이 하동군(河東郡) 횡천면(橫川面) 남산리(南山里) 둔동(遯洞)으로 이거(移居)하여 후손(後孫)들이 세거(世居)하고 있고, 장(檣)의 5대손(代孫) 18世 동원(東原): 1778年~1843年))이 고성군(固城郡) 거류면(巨流面) 은월리(銀月里) 월치(月峙)로 이거(移居)하여 세거(世居)하고 있다.

 

9세 의형(義亨)과 그의 아들들은 1498年(연산군4年(燕山君) 무오사화(戊午士禍) 이전부터 진주(晋州)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 가좌촌(佳佐村)에서 고성현(固城縣) 서마면(西馬面): 마암면(馬巖面)) 신리(新里)로 이거(移居)하여 살아 *14)세덕(世德) 과 지리(地理)에 밝았던 연고(緣故)로 무오사화(戊午士禍)때에는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신리(新里) 어은동(漁隱洞)에 깊숙이 숨어 용케 급(急)한 화(禍)를 피(避) 할 수 있게 되어 고성(固城)에서 대성(大姓)으로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았다.

 

9세 의형(義亨)의 장남(長男)인 10世 진사(進士) 도(翿)의 손자(孫子)인 12世 고원군수(高郡守) 응성(應星)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화산리(禾山里), 동동(東洞), 삼락리(三樂里) 약정(樂亭), 외동(外洞), 거류면(巨流面) 가려리(佳麗里), 대가면(大可面) 금산리(琴山里)에 세거(世居)하고 있고, 9세 의형(義亨)의 차남(次男)인 10世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한(瀚)의 손자(孫子)인 12世 수문장(守門將) 복(福)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구만면(九萬面) 저연리(苧蓮里) 저동(苧洞)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그리고 9世 의형(義亨)의 3남(三男)인 10世 생원(生員) 허(詡)의 장남(長男) 참봉(參奉) 천령(千齡)의 손자(孫子)인 13世 통사랑(通仕郞) 규(逵)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신리(新里), 석마리(石馬里), 성전리(聖田里),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척정리(尺亭里)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13세 규(逵)의 동생(同生)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달(達)의 장남(長男)인 14世 현신교위(顯信校尉) 홍정(鴻程)의, 장남(長男) 15世 맹영(孟榮)의 자손(子孫)들은 고성읍(固城邑) 덕선리(德仙里), 외우산리(外牛山里),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양화리(楊化里), 암전리(巖田里)에서, 차남(次男)인 15世 중영(仲榮)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거류면(巨流面) 송산리(松山里), 은월리(銀月里), 용산리(龍山里), 고성군(固城郡) 상리면(上里面) 무선리(武仙里), 망림리(望林里),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척정리(尺亭里)에서, 3남(三男)인 15世 계영(季榮)의 자손(子孫)들은 고성읍(固城邑) 내우산리(內牛山里),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 암전리(巖田里)에서, 4남(四男)인 일영(日榮)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양화리(楊化里)에서 일부(一部)는 경남(慶南) 밀양읍(密陽邑) 교동(校洞)으로 이거(移居)하고, 5남(五男)인 번영(蕃榮)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삼락리(三樂里) 가매실에서 각각(各各) 세거(世居)하고 있고, 13世 달(達)의 차남(次男)인 14世 홍경(鴻卿)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유동(柳洞)에서 세거(世居)하고 있었다.

 

10世 허(詡)의 차남(次男)인 11世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천희(千熹)의 아들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 풍상(豊祥)은 무오(戊午),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경계(警戒)하여 *15)둔세지지(遯世之志)로 기호(其號)를 둔와(遯窩)라 하고, 마암면(馬巖面) 신리(新里)에서 합천군(陜川郡) 쌍백면(雙栢面) 외초리(外草里) 와야동(瓦也洞) 사인(士仁)으로 이거(移居)하여 그의 자손(子孫)들이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고 있다.

 

10世 허(詡)의 장남(長男) 참봉(參奉) 11世 천령(千齡)의 차남(次男) 12世 통예원인의(通禮院引儀) 세청(世淸)의 8대손(代孫)인 20世 오위(五衛)의 부호군(副護軍) 필신(必臣)이 고성읍(固城邑) 이당리(梨堂里) 불곡동(佛谷洞)에서, 산청군(山淸郡) 신안면(新安面) 장죽리(長竹里) 한빈(漢濱)으로 이거(移居)하여 세거(世居)하고 있다.

 

그리고 11世 천령(千齡)의 3남(三男)인 12世 계공랑(啓功郞) 세평(世平)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피(避)하여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신리(新里)에서,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여항산하(艅航山下) 금계동錦溪洞): 주서리(主西里) 좌촌동(左村洞))으로 이거(移居)하여 주리동(主吏洞): 주서리(主西里) 대촌동(大村洞))과 함안군(咸安郡) 가야읍(伽倻邑) 말산리(末山里)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9世 의형(儀亨)의 4남(四男)인 10世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익(翊)의 자손(子孫)들은 대대(代代)로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내인리(內仁里)에서 세거(世居)하다가, 익(翊)의 현손(玄孫)인 14世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백(伯)이 의령(宜寧) 어화촌(漁化村):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 운곡리(雲谷里))으로 이거(移居)하여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고 있고 일부(一部)는 의령읍(宜寧邑) 중동리(中洞里) 동동리(東洞里)에 살고 있다.

 

9世 의형(義亨)의 5남(五男)인 10세 진사(進士) 굉(翃)의 장남(長男)인 11世 참봉(參奉) 조령(兆齡)의 자손(子孫)들은 고성읍(固城邑) 이당리(梨堂里) 우곡동(愚谷洞)에서 세거(世居)하고 있고, 차남(次男)인 11世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 조희(兆喜)는 종숙(從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10世 령(翎)의 계자(系子)로 출계(出系)하여, 아들 12世 현(顯)의 증손(曾孫)인 15世 증좌승지(贈左承旨) 후영(後榮)의, 장남(長男)인 16世 태원(泰元)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상리면(上里面) 척번정리(滌煩亭里)에서, 차남(次男)인 16世 유후(惟煦)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구만면(九萬面) 와룡동(臥龍洞)에서, 3남(三男)인 증사헌부지평(贈司憲府持平) 태빈(泰彬)의 자손(子孫)들은 구만면(九萬面) 연동(蓮洞)에서 각각(各各) 세거(世居)하고 있다.

 

그리고 16世 태빈(泰彬)의 증손(曾孫)인 19世 광벽(光璧)과 아들 여용(汝龍) 부자(父子)가 임술초보(壬戌初譜): 1802年: 순조2年(純祖))와 갑인보(甲寅譜): 1854年: 철종5年(哲宗))를 주간(主幹)하였고, 그의 자손(子孫)들이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갈천리(葛川里)에서 세거(世居)하였다.

 

15世 후영(後榮)의 2제(二弟) 후무(後茂)의 자손(子孫)들은 고성군(固城郡) 상리면(上里面) 화리(禾里)치(峙)에서 세거(世居)하고, 3제(三弟) 후화(後華)의 자손(子孫)들은 고성읍(固城邑) 무랑리(武良里)에서 세거(世居)하다가,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묵곡리(默谷里)로 집단(集團) 이거(移居)하여 세거(世居)하고 일부(一部)는 무량리(武良里)에 잔류(殘留)하고 있다.

 

9世 인형(仁亨)의 3제(三弟)인 9世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낸 목사(牧使) 예형(禮亨)이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年(연산군10年(燕山君))가 일어나자 사화(士禍)를 피(避)하여 함안(咸安) 곽음산(郭嚴山): 여항산(艅航山))하(下)로 피신(避身)하여 *16)은덕(隱德) 별세(別世)후, 그의 10대손(十代孫)인 19世 증공조참판(贈工曹參判) 철운(哲雲) 대(代)까지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주리동(主吏洞): 주서면(主西面) 대촌동(大村洞))에서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다가, 아들 20世 기화(技華)가 고성현(固城縣) 포도면(葡萄面): 동해면(東海面)) 장기리(章基里)로 이거(移居)햐여 효행(孝行)이 *17)탁이(卓異)하고 년(年)이 90세(歲)로 수(壽)로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다.

 

9世 인형(仁亨)의 4제(四弟)인 9世 대사간(大司諫) 지형(智亨)은 백형(伯兄) 인형(仁亨)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連累)되자 관직(官職))을 사퇴(辭退)하고,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杮洞):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내인리(內仁里) 외동(外洞))으로 환거(還居) 하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인형(仁亨)이 부관참시(剖棺斬屍)되고 본인(本人)도 연루(連累) *18)피체(被逮)되어 장차(將次)를 *19)불측(不測)하게 되자 *20)앙약(仰藥) 자결(自決)하였다.

 

그리고 9世 지형(智亨)의 아들 10世 생원(生員) 흡(翕)이 함안(咸安) 시동(杮洞)에서 단성(丹城) 북동(北洞): 산청군(山淸郡) 신안면(新安面) 신안리(新安里) 원지(院旨))으로 이거(移居)하여 *21)은덕불사(隱德不仕)하고 있었는데, 그의 손자(孫子): 9世 지형(智亨)의 손자(孫子)) 11世 희민(希閔)이 일찍이 의령(宜寧) 가려동(佳麗洞) 모려촌(慕麗村): 의령군(宜寧郡) 가례면(嘉禮面) 가례리(嘉禮里))으로 이거(移居)하여 추계서숙(秋溪書塾)을 세우니, 마침 이곳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빙가(聘家): 처가(妻家) 빙부(聘父) 진사(進士) 허찬(許瓚) 김해인(金海人)) 동리(同里)라 질서(姪壻) 청행당(淸杏堂) 이원(李源): 합천인 (陜川人))과 아우 몽암(夢庵) 희현(希賢)과 동석(同席) 강토(講討) 하였다.

 

11世 희민(希閔)은 1519年(중종14年(中宗)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종숙(從叔) 10世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령(翎)과 같이 스승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를 구(救)하려고 1일(一日) 2소(二疎)하다가 경복궁(景福宮)의 북문(北門)인 신무문지화(神武門之禍)로 *22)차꼬(항양(桁楊) 7일(七日)만에 용문옥(龍門獄)에서 사(死)하였다 하나 시신(屍身)도 *23)수렴(收斂)치 못한 기묘사화(己卯士禍)의 명현(名賢)이었다.

 

그리고 11世 희민(希閔)의 증손(曾孫) 14世 생원(生員) 몽서(夢瑞)때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다시 의령(宜寧) 가례동(加禮洞)에서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운곡리(雲谷里) 자양산하(紫陽山下)로 피란(避亂)와서 5대(五代)만에 환고향(還故鄕)하여 대대(代代)로 운곡리(雲谷里) 어현동(漁峴洞)에서 세거(世居)하였다.

 

한편 작은집인 2世 판도사판서(判圖司判書) 원(源)의 세계(世系)는 3世 상장군(上將軍) 원수(元帥)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 충렬공(忠烈公) 방실(芳實) 대(代)까지는, 함안현(咸安縣) 병곡면(竝谷面) 내동리(內洞里) 내곡동(內谷洞):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내곡리(內谷里) 내곡동(內谷洞)) 광려산(匡廬山) 두봉하(兜峯下)인 속칭(俗稱) 뒷길(두능(杜陵)에 세전(世傳) 본거지(本居地)를 두고 관직(官職)에 임(任)하였다.

 

그리고 4세(世)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예(芮)가 내곡동(內谷洞)에서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杮洞):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내인리(內仁里) 외동(外洞))으로 이거(移居)하여 큰집인 5世 무진부사(茂珍府使) 운길(云吉)과 합류(合流)하여 5世 충청도안렴사(忠淸道按廉使) 영(潁), 6世 호조좌랑(戶曹佐郞) 전(槇), 7世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 흥손(興孫) 대(代)까지 세거(世居)하였다.

 

그리고 8世 계통(季通)이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고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의 벼슬을 하여 함안(咸安) 시동(杮洞)에서 한성(漢城: 서울))으로 이거(移居)하여 별세(別世)하였는데, 그의 아들 9世 세응(世應)이 중종반정(中宗反正)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으로 함안군(咸安君)에 봉(封)해져,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내고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평양감영(平壤監營)에서 별세(別世)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로 *24)추증(追贈)되고 양간(襄簡)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그리고 경기도(京畿道) 광주군(廣州郡) 광주읍(廣州邑) 중대리(中垈里): 경기도(京畿道) 광주시(廣州市) 중대2리(中垈二洞))에 사제전(賜祭田) 20(二十) *25)결(結) 산주회(山周回) 15리(十五里)의 *26)사패지(賜牌地)를 받으므로서 이곳이 서울에 정착(定着)하는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시초(始初)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고, 8世 계통(季通)이 그의 자(子) 9世 세응(世應)의 귀(貴)로 예(例)대로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追贈)되어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에 함성군(咸城君)으로 *27)추봉(追封) 되었다.

 

10世 여주목사(驪州牧使)를 지낸 오위장(五衛將) 진(震)의 아들인 11世 흡곡현령(歙谷縣令) 11世 석형(碩亨)의 5대손(五代孫)인 16世 양주목사(楊州牧使) 용래(龍來)가 경기(京畿) 광주(廣州) 중대리(中垈里)에서 경기(京畿) 안성군(安城郡) 보개면(寶蓋面) 남풍리(南楓里)로 이거(移居)하여 그곳에서 터를 잡았고,

 

11세(世) 석형(碩亨)의 차남(次男) 통덕랑(通德郞) 효자(孝子) 승(昇)의 계자(系子)인 13世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시진(時振)의 후계(後系)가 경기(京畿) 이천군(利川郡) 운성면(雪星面) 금당리(金堂里)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11세(世) 석형(碩亨)의 2제(二弟) 돈영부주부(敦寧府主簿) 계형(繼亨)의 아들인 12世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과(果)가 경기(京畿) 광주(廣州) 중대리(中垈里)에서 경기(京畿) 부평(富平)으로 이거(移居) 하였다가 11世 계형(繼亨)의 증손(曾孫)인 15世 영한(榮漢)이 함평현감(咸平縣監)이 된 연고(緣故)로 그의 아들 16世 통덕랑(通德郞) 봉조(鳳朝)가 그 곳의 세가(世家)인 안동김씨(安東金氏)에 장가들어 전남(全南) 영광군(靈光郡) 무양면(畝良面) 영암리(靈岩里)에서 대대(代代)로 정착(定着)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11世 석형(碩亨)의 3제(三弟) 황해도수사(黃海道水使) 원형(遠亨)이 경기도(京畿道) 광주군(廣州郡) 중대리(中垈里)에서 경기도(京畿道) 화성군(華城郡) 1리(一里)와, 경기(京畿道) 수원(水原) 학현동(鶴峴洞), 경기(京畿道) 용인(龍仁) 두모동(斗毛洞), 경기(京畿道) 안성(安城) 건지동(乾芝洞)으로, 이거(移居)하여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고 있고, 일부(一部)는 전북(全北) 익산(益山), 함열(咸悅) 등지(等地)에 살고 있다.

 

11世 석형(碩亨)의 4제(四弟)인 평양부윤(平壤府尹) 서형(瑞亨)의 아들 12世 진사(進士) 천상(天祥)이 경기(京畿) 광주(廣州) 중대리(中垈里)에서 전북(全北) 김제군(金堤郡) 진봉면(進鳳面) 인향리(仁香里)로 이거(移居)하여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고 있다.

 

9世 세응(世應)의 차남(次男)인 10世 대사간(大司諫) 림(霖)의 후손(後孫)은 아들 11世 선무랑(宣務郞) 창형(昌亨) 대(代)부터 경기(京畿) 광주(廣州) 중대리(中岱里)에서 충남(忠南)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신리(新里)에 시거(始居)하여 손자(孫子)인 12世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강(日工 ) 이래로 그 곳에서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고, 일부(一部)는 경기(京畿) 화성군(華城郡) 태안면(台安面) 진안리(陳雁里): 병점)(餠店))로 이거(移居) 하여 세거(世居)하고 있다.

 

12世 강(日工 )의 2제(二弟) 통덕랑(通德郞) 영(映)의 자손(子孫)들은 전북(全北) 김제군(金堤郡) 진봉면(進鳳面) 다회(하)리)(多會(下)里)와 성덕면(聖德面) 일원(一元)에서 세거(世居)하여그의 현손(玄孫)인 16世 광춘(光春), 영춘(榮春), 화춘(華春) 3형제(三兄弟)가 만경현(萬頃縣)의 향교(鄕校)가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 화재(火災)로 소실(消失)된 것을 가재(家財)를 틀어서 중수(重修) 복구(復舊)하니 유림(儒林)에서 *28)발문천거(發文薦擧) 하여, 회동사(檜洞祠)에 *29)제향(祭享) 되었고, 12世 강(日工 )의 3제(三弟) 통덕랑(通德郞) 돈(暾)의 자손(子孫)들은 전북(全北) 김제군(金堤郡) 진봉면(進鳳面) 인향리(仁香里)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9世 세응(世應)의 3남(三男)인 10世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 제(霽)의, 장남 선공감(繕工監) 가감역(假監役) 언형(彦亨)의 후계(後系)는 경기(京畿) 광주(廣州) 중대리(中垈里)에서 경기(京畿) 안성군(安城郡) 삼죽면(三竹面) 남강리(南光里)에 정착(定着)하고 차남(次男) 건능참봉(健陵參奉) 창손(昌孫)의 후계(後系)는 충남(忠南) 서산(瑞山) 해미(海美)와, 홍성(洪城)에 정착(定着)하여 살고 있다.

 

8世 계통(季通)의 차남(次男)인 9世 시응(時應)은 부여(扶餘), 함열(咸悅) 양(兩) 현감(縣監)을 지낸 연고(緣故)로 그의 아들 통덕랑(通德郞) 우(雨)부터 손자(孫子)인 11世 선략장군(宣略將軍) 번형(蕃亨)과 증손(曾孫)인 12世 경상도수영우후(慶尙道水營虞候) 엽(曄)과 그의 아우인 소(昭) 형제(兄弟)의 자손(子孫)들이 부여(扶餘)에서 대대(代代)로 세거(世居)하여, 일부(一部)는 전북(全北) 부안(扶安), 익산(益山) 등지(等地)에서 살고 있다.

 

한편 6世 호조좌랑(戶曹佐郞) 전(槇)의 차남(次男) 7世 항손(恒孫)은 담양부사(潭陽府使)가 되어 관직(官職) 때문에 고향(故鄕)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 (杮洞)을 떠나게 되어 그의 후손(後孫)들은 외지(外地)에서 전전(轉轉)하게 되었다.

 

8世 영주부사(榮州府使) 계달(季達), 9世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태응(泰應), 13世 예산군수(禮山郡守) 인우(仁祐), 14世 용양위사과(龍驤衛司果) 윤(潤), 15世 부사과(副司果) 해용(海龍) 대(代)를 거처, 7世 항손(恒孫)의, 8대손(代孫)인 16世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 상조(相祚)가, 비로소 전북(全北) 김제군(金堤郡) 대채산하(大釵山下)에 정착(定着)하여, 자손(子孫)들이 성덕면(聖德面) 묘덕리(妙德里)와, 정읍군(井邑郡) 감곡면(甘谷面) 승방리(勝芳里), 전주(全州) 등지(等地)에서 세거(世居)하고 있고, 24世 전(前) 청와대(靑瓦臺) 비서관(秘書官) 순종(順鐘)이 16世 상조(相祚)의 8대(代) 손(孫)이다.

 

6世 전(槇)의 3남(男) 7世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승손(承孫), 손자(孫子)인 8世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 계절(季節) 대(代)까지는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杮洞)에서 세거(世居)하다가, 9世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명응(明應)이 경기도(京畿道) 이천군(利川郡) 설성면(雪星面) 금당리(金堂里)로 이거(移居)하여, 10世 병마우후(兵馬虞候) 정(霆), 11世 영장(營將) 일형(一亨), 12世 장연부사(長淵府使) 순예(純禮)까지 계속 세거(世居)하였다.

 

그리고 13世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시진(時振)이 13촌숙(寸叔)인 임란공신(壬亂功臣) 12世 통사랑(通仕郞) 승(昇)의 계자(系子)가 되어 그의 9대손(代孫)인 22世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 하섭(夏燮)과, 10대손(代孫)인 23世 주전원경(主殿院卿) 기동(基東) 부자(父子)가 크게 명성(名聲)을 떨첬다.

 

한편 4世 예(芮)의 차남(次男)인 5世 진사(進士) 희(稀)의 세계(世系)는 6世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양생(陽生), 7世 청백리(淸白吏) 진주목사(晋州牧使) 해(海), 8世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환(桓), 대(代)까지는 본거지(本居地)를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杮洞)에 두고 관직(官職)에 임(任)하였으나, 9世인 이천현감(伊川縣監) 이천공(伊川公) 돈흡(墩洽)이 남산리(南山里) 모동(茅洞):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소포리(小浦里))으로 이거(移居)하여 종손(宗孫) 26世 권찬(權燦) 대(代)에 이르기까지 군북면(郡北面) 소포리(小浦里)와, 중암리(中岩里) 등지(等地)에서 세거(世居)하였다.

 

그리고 1840年(헌종6年(憲宗)에 숭의전령(崇義殿令)과 함안향교(咸安鄕校)에 의(依)하여 건립(建立)된 선조(先祖) 3世 방실장군(芳實將軍)의 사당(祠堂)인 남강사(南岡祠)를 *30)수호봉사(守護奉祀) 하며 가야읍(伽倻邑), 산인면(山仁面) 등지(等地)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9世 돈흡(墩洽)의 8대손(代孫)인 17世 진화(震華)가 소포리(小浦里)에서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보전리(寶田里) 보대동(寶垈洞)으로 이거(移居)하여, 화산리(禾山里), 대가면 (大可面) 유흥리(柳興里), 동해면(東海面) 내곡리(內谷里) 등지(等地)에서 세거(世居)하였고, 돈흡(墩洽)의 아우인 9世 충무위(忠武衛) 오위(五衛)의 부사직(副司直) 돈재공(遯齋公) 곤흡(坤洽)이 함안(咸安) 시동(杮洞)에서 의령(宜寧) 삼정촌(三亭村): 의령군(宜寧郡) 화양면(華陽面) 보천내동(寶泉內洞): 의령군(宜寧郡) 의령읍(宜寧邑) 대산리(大山里)으로 이거(移居)하여 그의 자손(子孫)들이 그곳에서 세거(世居)하였다.

 

9세 곤흡(坤洽)의 12대손(代孫)인 21世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기범(箕範)이 삼정촌(三亭村)에서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로 이거(移居)하여 그의 자손(子孫)들이 살고 있고, 그의 삼종제(三從弟)들인 21世 기권(箕權)의 종형제(從兄弟)들이 삼정촌(三亭村)에서 진양군(晋陽郡) 지수면(智水面) 압사리(鴨寺里)로 이거(移居)하여 그곳에서 자손(子孫)들이 살고 있었다.

 

9世 곤흡(坤洽)의 6대손(代孫)인 15세(世) 송무(松茂)가 김해부(金海府)의 속현(屬縣)인 웅천현(熊川縣): 창원군(昌原郡) 웅천면(熊川面))의 유학훈도(儒學訓導)가 됨으로서, 그의 4남(男)인 16世 온원(馧遠)이 삼정촌(三亭村)에서, 김해군(金海郡) 태야면(台也面): 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 강서구(江西區) 록산면(菉山面) 분절리(粉切里))로 이거(移居)하여 세거(世居)하였다.

 

그리고 그의 4대손(代孫)인 20世 응석(應奭)이 양산군(梁山郡) 웅상면(熊上面) 명곡리(椧谷里)로 이거(移居)하였다가, 5대손(代孫)인 21世 기정(箕正)이 양산군(梁山郡) 동면(東面) 법기리(法基里)로 이거(移居)하여 이곳이 16世 온원(馧遠) 자손(子孫)의 대대(代代)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한편 4世 예(芮)의 3남(男)인 5世 자산부사(玆山府使) 집(禾咠 )은 600年 전(前)에 함안현(咸安縣) 안인면(安仁面) 내동리(內洞里) 시동(杮洞):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내인리(內仁里) 외동(外洞))에서 경기(京畿) 가평(加平)으로 이거(移居)하여 조부(祖父) 3世 방실장군(芳實將軍)의 묘소(墓所)를 수호(守護)하였다.

 

6世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순례(純禮), 7世 곡산부사(谷山府使) 세호(世豪), 8세 부위부장(副尉部將) 문정(文靖)과 아우인 장사랑(將仕郞) 문식(文湜) 형제(兄弟)로 분파(分派)하여 자손(子孫)들이 가평군(加平郡) 가평읍(加平邑), 상면(上面), 하면(下面) 등지(等地)에서, 세거(世居)하며 선조(先祖) 3世 방실장군(芳實將軍)의 묘소(墓所)와 사당(祠堂)인 충열사(忠烈祠)를 수호(守護) 봉사(奉祀)하고 있다.

 

1930년대(年代) 당시(當時)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자손(子孫)들은 경남(慶南) 고성군(固城郡) 일원(一圓), 진양군(晋陽郡) 진성면(晋城面).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군북면(郡北面), 가야면(伽倻面).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 합천군(陜川郡) 쌍백면(雙栢面). 하동군(河東郡) 횡천면(橫川面), 양보면(良甫面), 악양면(岳陽面), 화개면(花開面). 산청군(山淸郡) 신안면(新安面), 단성면(丹城面). 거제군(巨濟郡) 하청면(河淸面), 연초면(延草面), 사등면(沙等面). 통영군(統營郡) 욕지면(欲知面). 경기도(京畿道) 광주군(廣州郡) 광주읍(廣州邑). 가평군(加平郡) 가평읍(加平邑), 설악면(雪嶽面), 상면(上面), 하면(下面).  이천군(利川郡) 설성면(雪星面). 안성군(安城郡) 삼죽면(三竹面). 화성군(華城郡) 대안면(臺安面). 김포군(金浦郡) 묵단면(默丹面). 충남(忠南)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서산군(瑞山郡) 해미읍(海美邑). 홍성군(洪城郡) 홍성읍(洪城邑). 전남(全南) 영광군(靈光郡) 무랑면(畝良面). 전북(全北) 김제군(金堤郡) 진봉면(進鳳面). 등지(等地)에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었다.

 

또한 80호(戶) 이상(以上) 모여 살고 있었던 집성촌(集姓村)으로는 고성읍(固城邑) 덕선리(德仙里), 우산리(牛山里), 무랑리(武良里), 이당리(梨堂里). 마암면(馬巖面) 신리(新里), 석마리(石馬里), 화산리(禾山里), 삼락리(三樂里). 대가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 양화리(楊化里), 암전리(巖田里), 척정리(尺亭里), 금산리(琴山里). 구만면(九萬面) 용와리(龍臥里), 저연리(苧蓮里). 상리면(上里面) 척번정리(滌煩亭里), 무선리(武仙里), 망림리(望林里). 거류면(巨流面) 송산리(松山里), 용산리(龍山里), 가려리(佳麗里), 은월리(銀月里). 동해면(東海面) 장기리(章基里) 등 23개(個) 마을이 있었다.

 

특히 경남(慶南) 고성군(固城郡)은 전국(全國)에서 함안이씨(咸安李氏)가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註>

*1)사승(私乘): 역사상의 사실을 기록한 책

*2)세전(世傳): 대대(代代)로 전(傳)하여 내려옴

*3)상고(詳考): 상세(詳細)히 참고(參考)하거나 검토(檢討)함

*4)현재(賢材); 뛰어난 재주

*5)과제(科第); 과거(科擧)

*6)연면(連綿): 잇닿거나 잇닿아 있음

*7)사명(賜名): 임금이 이름을 내려줌

*8)명문망족(名門望族): 문벌(門閥)이 좋고 명망(名望)이 있는 집안

*9)도의(道義); 사람이 마땅히 행(行)해야 할 도덕(道德) 상(上)의 의리(義理)

*10)막역지교(莫逆之交): 아주 허물없는 사귐

*11)문적(文蹟); 나중에 상고할 문서(文書)와 장부(帳簿)

*12)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을 세워 기리던 일

*13)창의(倡義): 국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어킴

*14)세덕(世德): 대대(代代)로 쌓아 내려오는 아름다운 덕(德)

*15)둔세지지(遯世之志): 현실(現實) 사회(속세(俗世))에서 도피(逃避)함. 은둔함을 표시하는 마음

*16)은덕(隱德): 숨은 덕행

*17)탁이(卓異): 남보다 뛰어나게 다름

*18)피체(被逮): 남에게 잡힘

*19)불측(不測); 짐작하기 어렵다

*20)앙약(仰藥): 독약(毒藥)을 먹음

*21)은덕불사(隱德不仕): 숨은 덕행을 베풀며 벼슬을 시켜도 하지 아니함

*22)차꼬(항양(桁楊): 옛날의 형구(刑具)의 한 가지. 목에 씌우는 칼과 발에 채우는 차꼬

*23)수렴(收斂): 거두어들임

*24)추증(追贈): 종2품(從二品) 이상(以上)의 벼슬아치의 죽은 부.조부.증조부에게 관위(官位)를 내림, 나라에 공로(功勞)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 그 관위를 높여 줌

*25)결(結): 조세를 매기기 위해 논밭의 면적 단위

*26)사패지(賜牌地): 임금이 내려준 전(田)지

*27)추봉(追封): 죽은 뒤에 봉함

*28)발문천거(發文薦擧): 통지(通知)하는 글을 보내어 인재(人材)를 어떤 자리에 추천(推薦)하는 일

*29)제향(祭享): 나라에서 올리는 제사

*30)수호봉사(守護奉祀): 지키고 보호(保護)하며 조상(祖上)의 제사(祭祀)를 받듦